아내와의 갈등 후 막 돌을 앞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가 식탁에 올라가는 모습에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퇴근 후 아내에게 들을 잔소리가 무섭습니다. 퇴근하기 싫습니다. 두 사람만 다투면 그나마 견디겠지만 다툰 후 감정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가의 조언과 솔루션
아내와 아이를 아끼며 이해하시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 많이 답답하고 속상하실 거 같습니다. 질문을 읽는 내내 제 일처럼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퇴근하기 싫습니다'가 화살처럼 날아와 제 마음에 박힐 정도입니다. 왜냐면 저도 아이들을 키우며 많이 느끼는 마음이었으니까요. 제가 아빠교육을 해오며 들었던 아빠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내가 힘들더라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 ‘아이에게 내 감정 때문에 상처 주는 아빠이고 싶지 않다’ 였죠. 저 역시도 이 다짐은 다르지 않습니다. 아빠교육에서 이런 소망들이 나오는 걸 봐도 제가 질문자님의 글을 공감하며 읽은 걸 봐도 저를 비롯한 많은 아빠들이 질문자님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결혼 생활을 연구한 심리학 연구들 역시 질문자님과 많은 아빠들의 시련을 위로해 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결혼 후 배우자에 대한 만족도는 꾸준히 좋아집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행복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입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여러 어려움이 기다립니다. 관계만족도가 급격하게 낮아집니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외면하려는 의사소통도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연구결과들은 표면적으로 ‘출산은 부부관계의 시련이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 연구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구들을 조금 다르게 봐야합니다. 결론에 가려진 과정을 봐야하죠. 연구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려면 많은 부부의 응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부부가 응답했을지라도 통일된 견해가 있어야 합니다.
이 두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믿을 수 없는 연구입니다. 즉 연구 결과가 믿을 만하다면 ‘출산의 시련’은 많은 부부가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이라는 겁니다. 달리말해 출산 후 갈등은 개인의 성격 차 보다는 환경의 변화 탓이 더 큽니다. 질문자님의 경우에 적용하자면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질문자님의 부족한 인격 탓이나 부족한 사랑 탓이 아닙니다. 다만 사랑이라는 두 가족에 돌봄이 찾아와 세 가족으로 탈피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환경을 맞아 면역력을 기르고 변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시거나 두려워하시기보다 퇴근하셔서 이 어려움을 아내와 함께 나눠보시길 권해봅니다.
좋은 아빠 되기를 포기하세요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라고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부 간의 갈등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질문자님의 질문에서 아내분과 어떤 이유로 갈등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우선 저는 질문자님이 부담을 조금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를 포기하는 거죠. 아빠교육에서 많은 아빠들은 ‘좋은 아빠’가 되길 기대하고 프로그램을 신청합니다. 하지만 전 역설적으로 ‘좋은 아빠’를 포기하라고 말씀드리죠.
그 이유는 ‘좋은 아빠’는 다른 말로 ‘인정받아야 하는 아빠’라는 속내를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빠’를 꿈꾸는 순간 우리는 인정과 불인정이라는 객관식 문제 앞에 놓입니다. 이 문제 앞에서 불인정이라는 채점결과를 받아든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몰려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서글프고 좌절하고 자책하고 탓하고 싶어지죠. 아내의 불만족이나 아이의 부족함이 스스로에 대한 채점표가 돼 버리는 셈입니다. 그러니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채점까지 하는 아내와 아이에게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스스로 ‘좋은 아빠 되기’ 시험 응시를 멈출 때 아내로 향하거나 아이로 향하는 감정을 멈출 수 있습니다.
‘좋은 아빠’가 아니라면 ‘어떤 아빠’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저는 ‘외면하지 않는 남편’이 돼라 조언하고 싶습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우선 아빠이기 전에 남편이셔야 합니다. 아이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아빠이기 전에 아내의 편에 서는 남편을 꿈꾸셔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님과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지만 부모님 간의 관계에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러니 아빠만큼이나 남편은 아이에게도 중요합니다.
둘째, 외면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좋은’을 포기하신다고 상대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의 불만족을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모두 들어줘야 하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빠나 남편으로서도 하기 싫고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있다면 당당히 표현하십시오. 다만 ‘어쩔 수 없어!’라고 말씀하시기보다 아쉬울 아내의 마음에 적극 관심을 보이거나 아내의 감정을 끝까지 궁금해 하고 듣는 것입니다.
많은 일들을 척척해내는 해결사 아빠보다는 해결할 수 없는 일과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라도 함께 견뎌주는 남편을 우선 꿈꿔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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