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아이가 친구와 놀다가 시간이 늦어 집에 가자면 막무가내로 떼를 씁니다. 어떻게 달래야 할까요?
늦은 시간까지 일이 있어 아이를 잠시 이웃 친구 집에 맡겼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일을 마치자마자 저녁도 못 먹고 아이를 데리러 친구네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더 놀다 가겠다고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갑니다. 참 곤욕스러운 상황입니다. 민망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추스르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한창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에게 그만 집에 가자고 했을 때 ‘네 알았어요.’하고 순순히 따라 나오는 아이와 안가겠다고 버티는 아이 중에 어느 쪽이 정상적인 일곱 살 아이일까요?
순순히 따라 나오는 아이가 있다면 아마도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친구와 노는 게 너무너무 재미없었던 경우가 아니면 평소 지나치게 엄격한 양육으로 인해서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 못하게 된 무기력한 아이인 경우. 그렇게 보면 아이가 안가겠다고 저항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오히려 다행인 일입니다.
“그렇다고 늦은 시간에 민폐 끼치면서 마냥 아이가 하자는 데로 할 수는 없잖아요?”
네, 물론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겠지요. 그러려면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차피 힘으로 끌고 가는 것도 무리잖아요? 갓난이 때처럼 번쩍 안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이는 친구네 더 있게 될 경우 어른들이 겪을 어려움을 잘 모릅니다. 상대방 가정에 대한 미안함, 수면 시간에 대한 걱정, 혹시 아이를 두고 갈 경우 다시 데리러 와야 하는 수고로움, 엄마의 피로와 배고픔 등등의 사정을 아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설사 설명한다 한들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제일 난감한 것은 아이와 대화를 해보려 해도 들을 생각을 않고 울고만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화를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기다리기’입니다.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들을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마음을 내려놓고 울고 있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상태로 차분히 기다립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조바심이 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그 상태로 삼십 분을 울까요, 한 시간을 울까요? 어차피 아이도 더 놀고 싶어서 안가겠다고 한 것이니 그렇게 마냥 울기만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보낼 마음은 애초에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더 이상 재촉하지 않고 잠잠한 것을 느끼면 곧 울음을 멈추고 눈치를 살필 겁니다. 계속 놀아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진 건지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그럼 이제는 아이의 마음을 알아 줄 차례입니다. “우리 소윤이가 정말 재미있게 놀고 있었나보구나. 그래서 집에 가기가 싫구나.” 엄마가 마음을 알아주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이제는 엄마의 사정을 말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가야하는 데 네 생각엔 어쩌면 좋을 것 같아?” 그럼 아이도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나름대로 궁리를 내어놓을 것입니다. 필시 엄마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방법들이겠지요. 그래도 아이가 말을 마칠 때까지 끊지 말고 들어줍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결코 설득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충분히 자기 생각을 말하고 나면 이제 엄마 차례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지?” 그럼 아이도 다시 나름대로 방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역시 이번에도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방안’들이지만 아이는 지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엄마와 소통하려 노력하는 중이란 걸 기억한다면 아이의 말을 자르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려주고, 마음을 알아주고, 이야기를 듣고, 사정을 말 한 후에 다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드디어 엄마가 원하는 것을 말할 때입니다.
“너는 여기서 더 놀고 싶지? 엄마는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싶어.”
왜 엄마가 집에서 밥을 먹고 싶은지 너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아이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했듯, 엄마도 본인이 원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는 것입니다. 엄마도 분명히 불편한 것이 있고 귀찮은 것이 있는데 많은 엄마들이 이것을 아이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못합니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면 아이에게 희생적이지 않은 ‘나쁜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무튼 이러한 태도가 아이와의 소통을 방해하는 장해물이 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엄마의 본심을 솔직히 밝혔다면 다음에 할 일은 타협점을 찾는 것입니다.
타협이란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양보의 순서는 누가 먼저여도 상관없습니다. 가령 10분만 더 놀다 가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밥 먹는 시간을 늦추는 것이니 엄마가 먼저 양보하는 셈입니다. 반대로 지금 바로 가는 대신 집에 가서 아이가 원하는 간식을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아이가 먼저 양보하고 엄마가 나중에 보상해주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한발자국의 양보도 하지 않고 당장 아이를 데리고 나오고 싶어 하는 엄마가 있다면 그 엄마는 고집 피우는 아이의 모습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으로 밀어붙여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그 순간 아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배웁니다. ‘아! 역시 고집을 세게 부리면 원하는 데로 할 수 있구나!’ 그리고 다짐합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내가 엄마보다 더 세게 고집을 부려야지!’
만약 10분을 더 놀고 가기로 타협을 하였다면 반드시 시계를 보여주면서 10분 후가 언제인지 일러 주여야 합니다. 아이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위에 말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았다면 대게는 약속한 시간에 아이가 순순히 따라 나설 것입니다. 엄마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데로 말입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가 계속 고집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10분이 왜 이리 짧아! 나 더 놀다 갈 거야!”하고 말이죠. 많은 부모들이 여기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감정적인 대처를 합니다. 그래서 다음 장면은 화가 잔뜩 난 부모와 울고불고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아이의 모습으로 넘어가고 한 시간 후에는 둘 다 굳은 표정으로 찬바람이 쌩쌩 부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되지요. 부모 입장에서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이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요?
첫 번째 타협이 실패했다면 두 번째 타협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두 번째 타협은 엄마가 한 발자국 더 양보하는 것이니만큼 아이도 그 이상으로 더 양보해야만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 두 번째 타협안으로 30분을 더 놀다 가는 것이 채택되기 위해서는 아이도 반드시 그 이상의 양보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일주일 간 TV 시청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아이에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과자나 사탕, 게임 등을 포기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엄마 입장에서도 분명 30분을 더 있다 갈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매력적인 타협안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아이가 지불해야할 대가는 아이가 나중에 지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혼자서 자기’, ‘매일 책 읽기’ 등은 아이가 안 지키면 그만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TV, 게임기, 과자 등은 부모가 치워버리면 아이는 싫어도 안 지킬 수가 없지요. 하지만 그 기간을 아이가 지킬 수 있을 만한 정도로 정해야 합니다. ‘앞으로 영원히 과자 안 먹기’와 같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제시할 경우엔 지켜지지도 않을뿐더러 나중에 약속을 못 지킨 아이 입장에서도 좌절감만 느끼게 될 뿐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맞바꿀 가치가 있는 타협안이 떠올랐다면 아이에게 제시하고 선택하도록 합니다.
“네가 정 원한다면 30분을 더 기다려줄게. 대신 앞으로 일주일간은 TV를 볼 수 없어. 어떻게 하고 싶니?”
아이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한다면 그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만약 선택을 하지 않고 계속 떼를 부린다면 시계를 보여주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줍니다. 떼를 부리며 보내는 시간도 기다려주는 30분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이죠. 아이가 끝까지 선택을 안 하고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은 엄마가 제안한 타협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하면 됩니다. 30분 후에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면 아이는 따라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안 따라 나온다면 문 밖에서 잠시 기다려보세요. 엄마 없이 혼자 그 집에 남아 있을 자신이 있는 아이였다면 애초부터 엄마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떼를 부리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약속대로 일주일간 TV를 치우면 됩니다. (귀찮아서 치우지 않은 상태로 아이에게 보지 말라고 말만 하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으니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위에 제시한 것은 하나의 예일 뿐 실제로는 다양한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 원칙은 ‘기다려주기’, ‘선택을 아이에게 맡기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하기’ 입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기다려주기’입니다.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려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는 ‘기다리기’ 하나만 기억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아마도 부모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겁니다. 왜 그럴까요?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조바심이 난다는 뜻입니다. 조바심이 난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아이가 주위 사정과 상관없이 더 놀고 가려는 ‘자신의 욕심’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상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는 성향이 강한 아이들은 사실 부모가 보여준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 반대로 남의 마음을 존중하고 고려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엄마가 먼저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고 기다려 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아이는 거울입니다. 거울에 비추인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면 나를 바꾸는 것만이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꾸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바뀐 내 모습만큼 아이의 모습도 바뀔 것입니다. 가령 “나 무조건 더 놀다 갈 거야!”라고 떼쓰는 아이에서 “엄마, 일주일은 너무 길어요. 이틀만 TV안 보는 걸로 하면 어때요?”라고 말하는 아이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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